[보쿠아카] 보쿠토가 아카아시를



26세 배구선수 보쿠토 X 고3 아카아시






첫만남은 뭐 학교에서 주최하는 <우리 학교를 빛낸 선배와의 만남> 이런 데에서 시작됐겠지. 필수로 참석해야 하는 자리는 아니었고 그냥 후쿠로다니 졸업생 중에 꽤 성공한 선배들이 와서 강연이나 조언 해주고 그냥 그런 행사였어. 이번엔 후쿠로다니 배구부에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인 보쿠토 코타로가 오기로 했겠지. 3학년인 아카아시는 배구부가 아니었지만 친한 친구들의 대부분이 배구부였고 이거 들으면 생활기록부에도 적어준대서 그냥 편한 마음으로 참가 신청서를 냈어. 방과후에 소강당에서 진행된 행사에는 꽤 많은 학생들이 왔고 자리가 모자라서 뒤에 의자를 더 끌어다 놓아야 했는데 아카아시는 친구들 덕분에 앞자리에 착석했고. 아카아시는 스포츠에 딱히 관심이 없어서 몰랐지만 여기저기서 들리는 '보쿠토'란 단어에 어떤 사람이 나올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어. 보쿠토가 드디어 단상 위에 모습을 드러냈고 뒤에서 함성소리가 들렸어. 그 열기에 아카아시는 '아 유명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어. 아카아시가 처음 마주한 보쿠토는 그냥 딱 보기에도 배구선수, 그 자체였어. 탄탄히 잡힌 근육부터 해서 살짝 그을린 듯한 피부. 투박한 손에는 군데군데 굳은 살도 박혀 있었고. 보쿠토가 강연을 시작했고 왠지 아카아시는 그와 자주 눈이 마주치는 느낌을 받았지만 뭐 앞자리니까 어쩔 수 없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 강연이 끝나고 갈 사람은 가고 질문이 있는 사람들은 남아서 개별적으로 보쿠토에게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졌어. 보쿠토에게로 쪼르르 달려가 이것저것을 물어보는 배구부 친구들을 아카아시는 멀찍이서 기다리고 있었지. 근데 자꾸 보쿠토가 자길 힐끔거리는게 느껴졌어. 뭐야,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

"어 너 거기! 넌 나한테 질문 없어?"

아카아시가 검지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저요?" 하고 묻자 보쿠토가 고개를 끄덕였음. 없는데요, 그렇게 대답하기도 전에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앞으로 걸어왔음.

"이름이 뭐야?"
"제 이름은 왜요?"
"아카아시, 케이지?"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교복에 달린 명찰을 보며 이름을 읽었음.

"나 너 번호 좀 주면 안돼?"
"예?"

아카아시가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음. 보쿠토는 주머니를 뒤적여 폰을 찾아내 아카아시에게 건넸음.

"번호! 번호 주라! 나 너랑 연락하고 싶은데!"
"뭐, 뭐야!!"

아카아시가 전력으로 뛰어 도망갔어. 어디 가! 보쿠토가 그렇게 외치며 아카아시를 쫓아가려 했지만 "선배 어디가세요!" 하고 자신을 붙잡는 배구부 후배들 탓에 보쿠토는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지.




그 날 이후로 보쿠토는 매일 아카아시 보려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겠지. 아카아시는 진학반이라 학교 끝나고 야자했는데 그거 모르고 그냥 딱 학교 끝날 시간 맞춰서 온 보쿠토는 아무리 기다려도 아카아시가 안나와서 당황했어. 혼자 교문 앞에서 알짱거리면서 왜 안오지 하면서 기다리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체육관 찾아갔지. 저번에 아카아시랑 같이 있던 친구들이 배구부였으니까 가서 물어보면 아카아시가 왜 안나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보쿠토가 체육관 딱 들어가니까 다들 하던 거 멈추고 "안녕하심까!!!" 하고 인사하겠지. 보쿠토가 막 두리번거리면서 뭐 찾는 듯 싶으니까 주장이 "누구 찾으심까??" 하고 물어. 보쿠토가 삼학년 애들은 어디있냐고 하니까 구석탱이 가리키는 주장. 구석에 모여서 리시브 연습하는 애들 중에 낯익은 얼굴을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감. 그 친구들 벌써 당황한 거 눈에 보이는데 보쿠토는 또 아무렇지 않게 "너 아카아시 친구지? 아카아시 어딨어?" 하고 묻겠지. 아카아시 친구들 막 당황해서 걔 야자한다고 더듬거리면서 답해줘.

"너네 걔 번호 알지? 번호  좀 주라."

보쿠토의 말에 친구들은 서로 눈빛교환하면서 우물쭈물거려. 왜 보쿠토가 아카아시 찾는지는 저번에 대충 옆에서 봐서 아니까 선뜻 번호를 못주겠는거지. 안줄거야? 보쿠토가 그렇게 말했고 대선배의 부탁에 아카아시 친구들은 어쩔 수 없이 아카아시 번호를 넘겼어.

보쿠토 번호 받고 체육관 나오자마자 아카아시한테 전화 걸겠지. 근데 모르는 번호라서 그런지 안받아. 보쿠토는 다시 체육관 가서 애들한테 야자 언제 끝나는지 물어보겠지. 열시에 끝난다는 대답 듣고 근처에 세워둔 차에 가서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보쿠토. 열시 거의 다 돼서 다시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카아시는 안나와. 불굴의 의지를 가진 보쿠토는 진짜 아카아시 나올 때까지 기다려. 한시간 정도 기다리니까 대충 저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이 걸어오는거야. 보쿠토가 "아카아시!!!" 하면서 손 흔드니까 멈칫하는 게 보여. 당황한 아카아시는 사람들 눈치를 보며 뛰어와서 "왜 오셨습니까." 하고 말해.

"아카아시 보고 싶어서 왔지!!"

보쿠토가 실실 웃으면서 말했고 안그래도 굳어있던 아카아시의 표정은 더 굳어져.

"아카아시! 집 어디야! 데려다줄게!!"

그렇게 말하면서 아카아시 따라가는 보쿠토. 아카아시가 "제발 좀 그냥 가주실래요." 하고 말했지만 굳이 버스정류장까지 따라갔겠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버스는 금방 왔고 아카아시는 대충 인사를 건넨 후 버스를 타고 사라졌어.

그 후로 보쿠토는 계속 교문 앞으로 찾아옴. 원래 야자 열 시에 끝나는데 아카아시는 한 시간 더 자율학습 해서 항상 열한시에 모습을 비췄지. 열한시까지 하는건 감독도 없이 그냥 자발적으로 하는거라 애들도 몆 명 없고 필수 야자 다 끝나면 열시에 학교에 불도 다 꺼버려서 아카아시가 나올 때 쯤엔 엄청 음침했어. 항상 집에 가는 길이 무섭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오는 거 싫어했겠지. 그나마 다행인건 열한시까지 하는 애들이 거의 없어서 자기가 보쿠토랑 같이 나가는 걸 보는 사람이 없다는 거. 야자 끝날 시간에 맞춰서 아카아시 데리러 오는 사람이 있다, 학교에 이런 소문이 나는 건 죽기보다 싫었거든.

항상 자기 기다리는게 뻔한 보쿠토를 아카아시는 못 본척 지나쳐. "아카아시! 왜 그냥 가!" 하면서 보쿠토가 따라와도 못 들은 척 했지. 보쿠토가 아카아시 따라잡고 옆에서 뭐라뭐라 조잘대도 "예. 그랬습니까. 와 재밌네요." 하고 영혼 없이 반응하는 아카아시. 학교에서 버스정류장까진 5분정도 걸어야했는데 아카아시는 요즘따라 그 5분이 미치도록 길어져서 슬퍼했어. 그래서 몇 번은 미리 교문 앞에 콜택시 불러놓고 보쿠토가 미처 따라오기도 전에 택시타고 사라진 적도 있었는데 매일같이 그렇게 하기엔 택시비가 너무 부담돼서 그냥 참기로 했지.










저번에 부재중 찍힌 모르는 번호랑 [아카아시 안녕! 나 보쿠토 코타로야! 번호 저장해~~♡♡] 를 비롯한 온갖 하트가 남발하는 문자를 매일같이 보내는 번호랑 똑같은 걸 깨달은 아카아시는 그 날 바로 번호 바꿔버림. 한 번도 번호 알려준 적 없는데 어떻게 알았지, 하고 생각하다가 배구부인 자기 친구들이 생각났어. 곧장 찾아가서 멱살 잡고 "나 번호 바꿨는데 이거까지 알려주면 죽여버린다 진짜." 하고 협박하고 나니 더 이상 하트로 가득한 문자는 오지 않았어.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번호 바꾼거 몰랐으니까 '힝 답장 안 와...' 하면서 서운해하고 있었지. 그 다음 날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는(쫓아가는) 길에 "왜 내 문자에 답장 안해줘?" 하고 묻는 보쿠토에게 "그 쪽 짜증나서 번호 바꿨어요." 하고 답하는 아카아시.

"헐!!! 너무해!!!! 그럼 바뀐 번호 알려줘!!!"
"제 말 안들으셨습니까? 그 쪽한테 연락 오는거 싫어서 번호 바꿨다니까요?"
"연락 안할테니까 알려줘!!!"
"그 말을 어떻게 믿어요?"

그렇게 말하며 아카아시는 버스 타고 사라져버렸어.





얼마 후, 아카아시는 엄청 위험한 생각을 했어. 돈도 꽤 많아 보이고 날 엄청 좋아하는데 한 번 제대로 써먹어볼까, 하는 생각. 그리고 그 날 집에 가는 길에 그 생각을 바로 실천했지.

"그 쪽은 차 없어요?"
"차? 왜?"
"있어요 없어요."
"있지! 맨날 요 근처에 세워놔!"
"버스 타기 힘든데 차로 데려다주시면 안됩니까?"

보쿠토는 아카아시랑 더 오래 같이 있을 생각에 신나서 "응응!! 그러자!!!" 하면서 자기 차로 데려가. 아카아시 아파트 보안 심해서 안 쪽까진 못들어가고 항상 아파트 입구까지 보쿠토가 차로 데려다주는데 매일같이 차가 바뀌어서 '아 물주 잘 물었다.' 하고 생각하는 아카아시. 벤츠였다가 BMW였다가 벤틀리였다가 가끔 날씨 좋은 날은 빨간색 페라리도 타고 오고. 그거 말고도 집 가는 길에 "배고파요. 밥 사주세요." 하면 또 신나서 맛있는 거 잔뜩 사먹이고 커피까지 쥐어주며 집 보내겠지. 솔직히 아카아시는 거기까지도 만족했어. 버스비 아끼고 밥값 아끼고. 근데 저번에 집가다가 그냥 흘러가는 말로 "저 신발 예쁘다." 하고 혼자 중얼댔는데 그거 주워들은 보쿠토가 다음 날 올 때 그거 색깔별로 사들고 와. 아카아시는 좀 당황했어. 그래도 사양않고 받았겠지ㅋㅋㅋㅋ 그 날 이후로 갖고 싶은 거 있으면 그냥 보쿠토 앞에서 "아 저거 맘에 든다." 이렇게 말하는 아카아시. 그럼 그 다음 날 뭐든지 제 소유가 되었어.

근데 어느날부터 갑자기 보쿠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어. 솔직히 걱정된다거나 왜 안왔는지 궁금하다기보다는 '아 버스타고 가기 싫은데.' 이 생각밖엔 없었고. 그러다가 보쿠토를 못본지 2주 째 되는 날 뭔가 이상하단 생각을 하겠지. 왜 안오지? 하면서 어딘가 불안하고 공허할거야. 되게 큰 부분을 잃어버린 느낌. 하지만 아카아시는 그 감정을 부정하겠지. 그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일 리가 없잖아, 안오니까 편하고 좋네. 하면서 합리화하는 아카아시. 그러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맨날 교문 쳐다보고 있고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도 누군가를 찾는것처럼  두리번거리고 있고. 그래도 보쿠토는 없었어.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니까 아카아시도 조금씩 화가 나겠지. 왜 화가 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마음 한 구석이 이상해. 없으면 편할거라고, 제발 그만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수백번 생각했지만 막상 말도 없이 사라지니까 아카아시는 마음이 싱숭생숭했어.

이 시각 보쿠토는, 지구 반대편에서 스파이크를 치고 있었어. 안그래도 리그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아서 출국 일주일 쯤 전에 말해줘야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슨 문제가 생겨서 급하게 떠나야 했겠지. 예를 들면 부상때문에 주전 세터 말고 다른 세터가 나오게 돼서 하루라도 빨리 연습에 합류해야 했다거나 그런거. 아카아시 데려다주고 집에 오자마자 에이전시로부터 빨리 짐챙겨서 공항으로 오라는 연락 받고 당장 써야하는 것만 대충 챙겨서 공항으로 달려가는 보쿠토. 아카아시가 연락처 안알려줬으니까 연락도 못하고 떠나버렸고. 나 없는 사이에 애인이라도 만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샘솟았고 그랬기에 보쿠토는 일부러 더 배구에 열중했어.

아카아시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친구들(배구부, 19세)에게 "이거 우리 누나 얘긴데..." 를 시작으로 모든 걸 털어놔. 친구들은 아카아시의 얘기를 가만히 듣다가 "너네 누나가 그 분 좋아하시나 보네." 하고 결론을 내주겠지. 안 좋아하거든!! 아카아시가 발끈했지만 친구들은 담담하게 "좋아하는거네. 좋아하는거야." 라며 고개를 끄덕였어. 아카아시가 욕을 내뱉는 게 들렸지만 그 중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어. 모두들 아카아시가 외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




리그에서 우승을 거머쥔 보쿠토는 아직 인터뷰나 기자회견 같은 자잘한 일정이 남아있었지만 대충 급한 일이 있다고 둘러댄 후 최대한 빨리 귀국했어. 공항가는 길에 백화점 들러서 아카아시 줄 선물도 잔뜩 사고, 또 면세점 들어와서도 아카아시 선물만 잔뜩 사고. 긴 비행을 마치고 일본에 도착하니 막 6시가 된 시각이었어. 보쿠토는 집에 가서 대충 짐만 두고 오랜만에 아카아시를 만나러 갔지. 매일같이 유니폼만 입다가 오랜만에 셔츠랑 슬렉스도 꺼내 입었어. 11시가 되니까 터덜터덜 걸어오는 익숙한 모습이 보여. 한껏 들뜬 보쿠토는 "아카아시!!!" 하고 그를 불러. 아카아시는 그 소리에 교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고 보쿠토가 보였어. 마음 속으론 '헛 게 다 보이네. 올 리 없잖아.' 라고 생각했지만 아카아시는 자기도 모르게 교문을 향해 뛰고 있었어. 그리고 교문 앞에는 진짜 보쿠토가 서 있었지.

"아카아시! 나 우승했다 우승!!"

신나서 방방 뛰는 보쿠토를 아카아시는 저도 모르게 꼭 껴안았어. 그러고는 "왜 이제 와요. 짜증나게." 하며 울어버렸지. 놀라서 그대로 굳어버린 보쿠토는 "어, 아카아시, 그, 미안." 하면서 말 더듬고. 아카아시는 한참을 안겨서 울기만 했어.

조수석에 앉아 있는 아카아시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있었어. 그 동안 뭐 했는지도 들었고, 연락을 못한 이유가 자기 때문이란 걸 아니까 뭐라고 하지는 못하는데 괜히 짜증나. 보쿠토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데 괜히 미워.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아카아시의 눈치를 보며 보쿠토가 "주... 주먹밥 사줄까?" 하고 묻는데 대답이 없었지. 아카아시는 아직 훌쩍거리고 있고. 집 앞에 도착했지만 아카아시는 한참을 내리지 않고 계속 앉아 있었어. 보쿠토가 "시간 늦었는데 얼른 가서 자야지. 내일도 학교 가야 하잖아." 하고 말하고 나서야 아카아시는 문을 열었어. 아카아시가 내리는 것을 보며 보쿠토도 "아!!!" 하고 소리지르며 따라내렸지.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내리는 걸 보고 들어가지 않고 잠깐 그 앞에 서 있었어. 보쿠토는 트렁크를 열어 오는 길에 사온 선물이 담긴 쇼핑백을 한가득 꺼내어 아카아시에게 건넸어.

"아카아시 생각나서 사왔어!! 주는 거 깜빡할 뻔 했다."

아카아시는 그걸 받지 않고 그저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어. 그러다가 "나 이거 필요없어요." 하고 말하겠지.

"왜? 마음에 안들어? 딴 거 사줄까?

보쿠토가 당황한게 눈에 보였어. 그러는 동안 아카아시는 또 한 번 눈물을 터뜨렸지. 보쿠토는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내려두고 아카아시를 안아주며 달래보지만 아카아시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어. 보쿠토는 자기가 또 뭘 실수한건지 생각하고 있었고.

"나 선물 같은 거 필요없어요. 나랑 연애해요. 번호 줄테니까 연락도 맨날 해요. 가면 간다, 오면 온다 말해줘요. 막 사라지지 마요. 나 버스타고 집 가는 거 싫은데. 왜 맘대로 막 없어져요?"

아카아시가 히끅이며 말했어. 개연성 없는 내용에 발음도 잔뜩 뭉개졌지만 보쿠토는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지.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토닥여주며 "알겠어 알겠어 그니까 얼른 뚝 해. 응? 뚝!" 이라고 말했지. 어느정도 눈물 그친 아카아시는 수치심이 몰려오며 얼굴이 막 빨개졌어. 아카아시는 보쿠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대충 바닥에 떨어진 쇼핑백 주워들고는 "내, 내꺼죠? 그럼 나 가요!" 하며 후다닥 사라져버렸음. 번호 주고 가! 하는 보쿠토의 목소리에도 돌아보지 않았지.

보쿠토는 집에 와서 아까 들은 말을 되새겨보았어.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말은 단연코 '나랑 연애해요.' 였지.

"내일 말 바꾸면 어떡하지. 아 녹음 해둘걸."

분명 엄청나게 피곤했지만 졸음이 싹 달아난 듯 했어.





그 다음 날, 보쿠토가 새로 사 준 스니커즈를 신은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어. 집에 가면서도 말 한마디 없었지. 보쿠토는 그런 아카아시를 보며 조금 불안해 했어. 설마 어제 일 없던 걸로 하자는 건 아닐까, 하고. 그리고 그 걱정은 아카아시가 차에서 내리면서 쥐어주고 간 쪽지를 본 후에 완전히 사라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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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고 대학 발표가 나왔어. 다행히도 아카아시는 희망하던 학교에 합격했지. 수능(일본에서도 수능 보나여? 쨌든 수능.) 끝나고 나선 야자도 안하고 학교도 일찍 끝나거나 안가니까 매일같이 손 잡고 데이트나 다니는 보쿠아카. 하루는 같이 영화보고 저녁 먹고 집까지 데려다줬는데 아카아시는 차에서 내릴 생각이 없어 보였어. 안 내려? 보쿠토가 그렇게 묻자 아카아시는 "주차장으로 들어가요." 하고 대답했지.

"왜?"
"동 호수 얘기하면 들여보내줘요."
"그니까 왜?"
"오늘 집에 저밖에 없어요."

보쿠토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어. 그, 그니까 그 말은 아카아시, 보쿠토가 더듬대니까 "저도 이제 성인이에요." 하고 쐐기 박는 아카아시. 그 말에 보쿠토는 망설임없이 지하주차장으로 차를 몰았지.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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