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아카] 아쿠아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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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 비록 이게 데이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보쿠토는 자신이 편한대로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서 온 메세지 창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금요일 날 바쁘세요? 안바쁘시면 수업 끝나고 같이 영화보러 가실래요?]

벌써 받은 지 며칠이나 된 메세지였지만 보쿠토는 아직까지 당시의 기쁨과 흥분을 잊지 못했는지 침대에 누운 채 발을 동동 굴렀다. 보쿠토는 시간을 빨리 감아서 오늘을 금요일로 만들고 싶다는 부질없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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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밀히 따지면 썸이지, 하고 보쿠토는 생각했다. 다른 수업을 듣는데도 굳이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는 것, 마주칠 때 씨익 웃어주며 괜시리 팔을 툭 치고 지나가는 것, 웬만한 친구들보다 더 자주 통화하고 일어난 직후부터 잠들기 바로 전까지 하루종일 메세지를 주고 받는 것. 그런 아카아시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이것은 썸이 분명하다고 보쿠토는 단정지었다. 뭐 보쿠토도 사실은 아카아시가 어느정도 마음에 있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슬렉스 핏이나 그 아래로 보이는 가느다란 발목. 섹시한 눈매가 매력적이었으며 곱슬거리는 머리카락도 귀여웠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보쿠토는 '아, 아카아시랑 사귀면 진짜 행복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열두 번씩 했다. 그렇다. 썸, 그것은 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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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흘러 금요일이 되었다. 보쿠토는 옷장을 열었다. 딱히 입을만한 옷이 없었다. 보쿠토는 옷장 앞에 앉아 옷을 새로 사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이내 심플한 흰색 반팔 티와 가장 아끼는 청바지를 꺼내 입은 후 매일 입던 꼬질꼬질한 과잠 대신 카키색 항공점퍼를 걸쳤다. 신경은 썼지만 신경 쓴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선물받은 향수까지 뿌린 보쿠토는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최근 살이 좀 내린 덕분인지 핏이 제대로 살았다. 발목이 살짝 보일 정도로 접어 올린 바지 기장도 딱이었다. 보쿠토는 옆에 놓인 왁스를 집어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앞머리 내린 게 더 괜찮아요, 하던 아카아시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마에 스쳐 간질거리는 앞머리의 감각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만 오늘은 그런 것 쯤은 감수할 의향이 충분히 있는 날이었다.

더러워질까봐 신지 않았던, 꽤 비싸게 주고 산 흰색 스니커즈까지 꺼내어 신고 나온 보쿠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등교를 했다. 마주치는 동기들과 선배들에게서 "오늘 괜찮은데? 어디 가?" 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은 보쿠토에게 은근한 자신감이 붙었다. 거 봐, 나 오늘 좀 괜찮다니까. 보쿠토는 건물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다 앞머리를 슥슥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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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쿠토는 자신보다 조금 늦게 수업을 마친 아카아시와 함께 영화관으로 향했다. 아카아시와의 첫 데이트였다.

"뭐 볼래?"

보쿠토의 말에 아카아시는 며칠 전 개봉한 로맨스 영화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포스터만 봐도 마음 한 구석이 간질간질해질 정도의 달달함을 지닌 영화였다. 누가 뭐래도 연인 사이에만 볼 수 있는, 적어도 썸이라도 타야 볼 수 있는, 그런 영화라고 보쿠토는 멋대로 단정지어 버렸다. 아카아시 너도 내가 마음에 드는구나? 라는 말은 굳이 뱉어내지 않았다. 이걸로 두명이요, 보쿠토는 망설임 없이 빠르게 표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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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는 내내, 둘 사이엔 팝콘과 콜라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팝콘을 집어 먹다가 손이 스친다거나 하는 클리셰 돋는 스킨십조차 없었다. 생각보다 재밌네요, 하며 상영관을 나서는 아카아시를 보며 보쿠토는 고뇌에 빠졌다.

'뭐지. 밀당인가. 그럴 리가 없잖아. 분명 쟤도 내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고. 아 먼저 손을 잡았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용기가 없었나? 역시 내가 먼저 손을 잡았어야 했지? 그렇지?'

의식의 흐름이 거기까지 미친 보쿠토는 영화관을 나와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언제 손을 잡아야 자연스러울까 하는 고민 뿐이었다.

"배고프죠? 밥 먹으러 가요. 영화 보여주셨으니까 밥은 제가 살게요."

보쿠토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기만의 세상에 빠졌다. 지금? 지금인가?

"뭐 드실래요?"

갑자기 눈을 마주쳐 오는 아카아시 때문에 보쿠토는 잔뜩 얼굴을 붉혔다. 마치 지금까지의 생각을 모두 읽힌 기분이었다. 보쿠토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자 아카아시는 "그냥 제가 자주 가는 식당으로 갈게요?" 라고 말했고 보쿠토는 어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쿠토는 먼저 발걸음을 옮겨 멀어져가는 아카아시를 한참이나 멍하게 쳐다보다가 이내 화드득 정신을 차리고는 아카아시의 뒤로 따라붙었다.

그렇게 또 아무것도 없이 식당에 도착했다. 지금 쯤 손을 잡아야겠지, 싶어 보쿠토가 손을 바지에 슥슥 문질러 닦는 사이 아카아시는 "여기예요. 함박스테이크 괜찮죠?" 하며 미닫이 문 속으로 사라졌다. 또 타이밍을 놓쳤다. 보쿠토는 주먹으로 아프지 않게 자신의 옆통수를 콩콩 쥐어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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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럼 이 쪽으로 갈게요. 조심히 가세요."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지하철 역 앞이었다. 보쿠토는 버스를, 아카아시는 지하철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기서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벌써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보쿠토의 머릿속이 빠르게 굴러갔다. 보쿠토는 자연스럽게 아카아시를 붙잡을 구실을 찾고 있었다.

'술, 술 마시자고 할까? 아니면 카페? 소화 시킬 겸 산책이나 하자고 할까?'

보쿠토가 고민하는 사이 아카아시는 역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보쿠토가 아카아시! 하고 불렀지만 이미 너무나도 멀어져버린 것인지 아카아시는 대답이 없었다. 잔뜩 시무룩해져 버스를 탈 기운도 없어진 보쿠토는 자신의 앞을 지나가던 택시를 대충 잡아 탔다. 택시를 타기엔 조금 먼 거리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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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로 아카아시는 연락이 뜸해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보쿠토가 보낸 메세지에 답장을 해주는 정도였고 바쁘다는 핑계로 보쿠토의 전화도 받아주지 않았다. 보쿠토는 애꿎은 이불을 먼지가 날릴 정도로 뻥뻥 차대며 소리쳤다.

"다 망했어!!!!!"

역시 그 때 손을 잡았어야 했나, 맥주라도 한 잔 하러 갔어야 했나, 하고 후회해 보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심지어 학교에서도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멀리 했다. 보쿠토가 인사를 건네려 해도 아카아시는 일부러 못본 척 보쿠토를 지나쳤다. 누가 봐도 자신을 피하는 것이 분명한 행동이었다.



*


 그니까 이건 내 아는 선배의 친구 얘긴데, 라고 운을 뗀 보쿠토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보쿠토의 맞은  편에 앉아 그의 말을 얌전히 듣고 있던 친구의 눈동자엔 연민이 깃들어 있었다. 이 새끼, 또 차였네.

"그래서 니가 보기엔 뭐 같아? 왜 갑자기 멀리하는거야?"
"딱 보면 모르냐. 어장관리잖아."
"진짜?"

보쿠토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는 테이블에 그대로 머리를 박았다.

"누군데."
"뭐가."
"너 갖고 논 사람."
"... 티 났어?"
"완전."

보쿠토는 망했어!!! 하고 소리를 빽 지르고는 흐르는 눈물 방울을 훔쳐냈다. 야, 너 울어? 하는 친구의 말은 간단히 무시해버렸다. 아카아시, 우리 행복했잖아. 아카아시. 아카아시. 보쿠토는 엎드린 채 한참을 하염없이 아카아시의 이름을 불러댔다. 보쿠토만의 썸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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