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아카] 봄날, 벚꽃 그리고 당신


보쿠아카 전력 60분 : 봄나들이


첫 전력 참여입니다!! 꺄꺄



BGM은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곡입니다!! 꼭꼭 들어주세요.











***






중요한 면접이 있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옷장 속에서 수트를 꺼내 입고 나온 아카아시는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 피곤해."


그의 감정이 여과없이 입 밖으로 흘러 나왔지만 아카아시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카아시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는 즐겨 듣던 노래를 틀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직 집에 도착하지도 않았지만 하루종일 긴장감에 시달리던 몸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듯 했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추해- 아카아시가 작게 속삭였다. 잔뜩 노곤해진 얼굴은 보기 싫게 추레해져 있었다. 아침에 정성을 다해 매만진 머리도 볼품없이 여기저기 헝클어져 있었다. 삶에 찌든 자신의 모습에 괜히 울적해진 아카아시는 초점을 창 밖으로 옮겼다. 어둑해진 밤거리는 고요했다. 아카아시는 움직이는 창 밖 너머 연속적으로 분포해있는 벚나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마치 봄이 온 것을 온몸으로 알리려는 듯 벚나무에는 가지마다 분홍빛의 꽃이 만개해 있었다. 아카아시는 창문에 무거운 머리를 기대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버스는 아카아시의 집과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아카아시는 내리지 않았다. 그 다음 정류장에서도, 다다음 정류장에서도 아카아시는 내리지 않았다. 이런 날이면 불현듯 보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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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아시가 도착한 곳은 예전에 보쿠토와 자주 오던 공원이었다. 공원 둘레를 따라 심어져 있는 벚나무가 퍽 예쁘다며 봄이 오면 보쿠토가 항상 아카아시를 끌고 오던 곳이었다. 벚꽂을 보니 이 공원이 문득 생각났다. 몸은 피곤했지만 모처럼 차려입고 나온 참에 이대로 집에 돌아가는 것은 조금 아쉽다고 생각한 아카아시는 항상 내리던 정거장을 지나쳐 이 곳에 도착했다.

아카아시는 공원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한 캔 샀다. 아카아시는 익숙히 공원 정문으로 향했지만 늦은 시각 때문인지 정문은 닫혀있었다. 아카아시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공원에 자그마한 입구가 하나 더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코너를 돌았다. 다행히도 쪽문은 열려있었고, 아카아시는 손에 맥주캔을 들고는 천천히 공원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벚꽃이 한창 예쁘게 피었을 시기였지만 시간이 상당히 늦은 탓인지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아카아시는 사람이 없는 이 공원이 한적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 한참을 걷기만 하던 아카아시의 눈에 익숙한 벤치가 들어왔다. 마침 잠깐 쉬었다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아카아시는 그 벤치에 털썩 앉았다. 요 앞에 있는 벚나무가 유난히 크고 예쁘다며 보쿠토가 자주 앉던 벤치였다. 보쿠토상, 잘 지낼까. 아카아시는 잔뜩 추억에 잠겨 그 시절의 보쿠토를 회상했다.  




 ***

    






때는 바야흐로 6년 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보쿠토와 아카아시가 진탕 싸운지 나흘 째 되는 날이었다. 왜 싸웠는지는 아무리 기억을 하려 해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또 사소한 일을 가지고 크게 싸웠던 것 같았다. 평소와 달리 아카아시와 보쿠토 둘 중 어느 누구도 먼저 사과를 하지 않았다. 때마침 체육관이 보수 공사를 하느라 부활동도 며칠간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만날 일이 없었다. 하루에 한 두번은 꼭 자신의 반으로 찾아오던 보쿠토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자 아카아시도 슬슬 짜증이 나려던 참이었다.

보쿠토도 먼저 사과를 할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이번 다툼에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 보쿠토였다. 물론 아카아시가 보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먼저 자존심을 굽히고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하고 보쿠토는 생각했다. 싸운 당일, 집에 돌아와서 한참을 망설이다 아카아시에게 자느냐고 보내본 연락에는 아직까지 답장이 없었다. 그 정도면 저도 할 만큼 했다고 보쿠토는 생각했다. 


부활동이 없어 일찍 집에 돌아온 보쿠토는 소파에 편하게 앉아 티비를 켰다. 시간이 너무 이른 탓에 티비에는 볼 만한 프로그램이 없었다. 보쿠토는 계속 채널을 돌리다 한 곳에 시선을 멈추었다. 일기예보였다.



그 날 저녁. 침대에 누워 배구공을 만지작거리던 아카아시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짜증스레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집어든 아카아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액정에 뜬 이름을 보고 잠시 고민하던 아카아시는 침대에 다시 몸을 뉘이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어디야."

"집이죠."

"나올래?"

"제가 왜-"

"너네 집 앞이야. 얼른 나와."


아니 저기. 아카아시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혹시나 해서 내다 본 창 밖에는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아카아시는 한숨을 내쉬며 겉옷을 집어들었다.





보쿠토가 저를 끌고 온 곳은 집에서 버스로 몆 정거장 떨어지지 않은 공원이었다. 꽤나 규모가 있는 공원이었기에 아카아시도 이 곳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기는 왜 온겁니까?"

"벚꽃보러."

"아, 진짜 장난하세요?"


잔뜩 표정을 굳히며 돌아가려는 아카아시의 팔을 보쿠토가 붙잡았다. 아직 화가 다 풀리지 않았는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 보쿠토가 아카아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껏 화가 난 아카아시가 입을 열어 보쿠토에게 한마디 하려는 순간, 보쿠토가 아카아시를 끌어당겨 안았다.


"뭐하시는..."

"미안해 아카아시."


특별할 것이라곤 없는 사과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세글자가 아카아시의 마음을 흔들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화가 나 있었지만서도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그런 마음이 잦아들었다. 어차피 시작할 적부터 칼로 물 베는 격의 다툼이라는 것을 아카아시도 보쿠토도 알고 있었다. 폐부를 가득 채우는 보쿠토의 향기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아카아시는 느꼈다. 봄 햇살에 사르르 녹는 얼음처럼 보쿠토의 포옹에 금세 마음이 풀려 코 끝이 찡해지려는 것을 겨우 참아낸 아카아시가 "뭐가요." 라고 말했다.


"괜한 자존심 세워서 미안해. 분명 나한테도 잘못이 있으니까 아카아시가 서운한 걸텐데 내가 그걸 몰랐어. 미안해."


그 말을 마친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그래도 4일이나 잠수탄 건 잘못한 거니까 그건 아카아시도 사과해, 하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안해요. 그건 진짜 내가 잘못했어요, 보쿠토 상."


둘은 한참을 서로를 꽉 껴안고 있었다. 나부끼는 바람에 떨어진 벚꽃잎이 보기 좋게 흩날렸다.


"근데 여기는 갑자기 왜 온겁니까?"

"여기 벚꽃 예쁘대서 너 보여주려고."

"화해하고 나서 와도 됐잖아요. 설마 먼저 사과하기 부끄러워서 설렁설렁 넘어가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죠?"


아카아시의 물음에 보쿠토가 "그런거 아니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카아시는 덤덤히 "그럼 왜요." 하고 다시 물었다.


"아니... 일기예보 보니까 내일 비 온대서..."

"예?"

"비 오면 꽃 다 떨어지잖아..."


보쿠토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쿠토를 끌어안고 있느라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보쿠토의 얼굴이 토마토마냥 새빨갛게 물들어있을 것이라는 것을 아카아시는 알 수 있었다. 아카아시는 귀여운 제 연인을 더 꽉 껴안아주었다. 두 사람을 감싸듯 떨어지는 벚꽃 잎이 아름다웠다. 아카아시는 시간을 이대로 멈추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를 껴안고 있다 아카아시가 슬쩍 고개를 들어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두 눈이 마주쳤고 둘은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아, 행복하다- 보쿠토가 말했고 아카아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쿠토는 잠시 망설이다 아카아시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보쿠토의 얼굴이 다시금 빨개졌다.



"보쿠토 상."


아카아시가 나긋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보쿠토는 부끄러워 잔뜩 갈라지는 목소리로 "응?" 하고 대답했지만 둘 중 어느 누구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 전에 아카아시가 진하게 혀를 얽어왔기 때문이었다. 흐드러지는 벚꽃이 몽환적이면서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



*




그 해의 벚꽃이 유난히 예뻤던 것은 아마 보쿠토와 함께여서 그렇지 않았을까, 하고 아카아시는 생각했다. 십 년 후에도, 이십 년 후에도 같이 벚꽃을 보러 오자는 말은 아쉽게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둘은 꽤나 오래 사귀었지만 이별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작년 가을에 보쿠토와 이별한 후 처음 보는 벚꽃은 유난히 희었다. 아카아시는 벤치에서 일어나 낮게 자라난 가지에서 꺾어낸 벚꽃을 손에 쥐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벚꽃놀이가 끝났으니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아카아시는 자신의 발 끝을 응시하며 천천히 걸었다. 추억의 공간을 조금 더 만끽하고 싶었다.






"아카아시?"


어디선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아카아시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아카아시의 시야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상대방은 역광 속에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아카아시는 그 사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


만나게 되면 분명 해야할 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 사람을 만나고 보니 아카아시의 입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누가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놓은 것 마냥 아카아시의 머릿속이 하얬다.


"아, 오랜만입니다. 보쿠토상."


분명 그 사람은 역광 속에 있었지만, 아카아시는 그 사람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사람 뿐만 아니라 그 사람 옆에 서 있는 다른 누군가와 맞잡은 손을 급하게 놓는 그 순간마저도 아카아시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어, 그러게. 잘 지냈어 아카아시?"


그 사람의 목소리가 급격히 떨렸다. 숨기지 못한 당황스러움이 아카아시가 있는 곳까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아카아시는 잠시 고민하다 "네." 하고 대답했다. 굳이 그 동안의 자신의 아픔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6개월 전 아카아시는 보쿠토에게 차였다. 보쿠토는 말도 안되는 핑곗거리를 늘어놓으며 아카아시에게 이별을 고했고 아카아시도 별 투정없이 그를 보내주었다. 보쿠토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건 아카아시도 어느정도 눈치챈 참이었다. 아카아시에게 미련이 남지 않았다면, 아무런 분노와 원망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그건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주위 사람들 모두 입을 모을 수 있을 정도로 아카아시는 힘들어 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잠도 잘 자지 못했다. 아카아시는 한동안 이별의 여운에 잠식되어 살았다. 안그래도 말랐던 몸은 더욱 말라갔고 얼굴에는 생기가 사라졌다. 그렇게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겨우 괜찮아졌던 참이었다. 겨우 잊어보려고 하던 참이었다. 근데 왜.

"누구야?" 하고 묻는 낯선 목소리와 "아, 그,
... 고등학교 후배." 하며 대충 둘러대는 보쿠토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카아시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처음부터 이 공원은 저를 반기지 않았다. 정문이 잠겨 있었을 때 그냥 순순히 돌아가야 했다. 왜 굳이 쪽문을 기억해내서는. 아카아시는 한참 전의 자신을 원망했다.

저 가볼게요. 아카아시가 급한 인사를 남기고 보쿠토를 지나쳤다. 이 시공간 속에 더이상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마치 물 속에라도 들어온 듯 숨이 턱턱 막혀왔기 때문이다. 아카아시는 빠르게 걸어 보쿠토를 지나쳤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아카아시는 돌아보지 않았다. 눈물로 잔뜩 엉망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






택시를 잡아 타고 집으로 돌아온 아카아시는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훌쩍이던 자신을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힐끔이는 것이 느껴졌지만 굳이 신경쓰지 않았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건 아카아시만의 착각이었다. 아카아시는 두 눈을 감고 그 위에 자신의 팔을 올렸다. 애초에 거길 가는 게 아니었는데, 그리고 그냥 지나치면 되지 보쿠토 상은 왜 굳이 사람을 불러세워서는. 눈 앞의 천장이 뿌옇게 흐려지며 관자놀이로 눈물이 흘렀다. 아카아시는 덤덤히 자켓 소매로 눈물을 훔쳐냈지만 그럴수록 눈물은 더 쏟아졌다. 그 날 밤, 아카아시는 잠들지 못했다. 아카아시가 그 날 꺾어온 벚꽃은 시들어버린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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