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아카 / 미네르바의 부엉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어서야 

그 날개를 편다.






좋아해요, 보쿠토 상.


아카아시가 무덤덤하게 보쿠토에게 고백을 한 지도 어느새 사흘이 지났음. 자율 연습을 마치고 늦은 저녁 함께 집으로 향하던 길에 정말 아무런 감정 없이, 목소리와 어조의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뱉어낸 고백이었음.


대답 해달라는거 아닙니다. 그냥... 보쿠토상도 알고 계셨으면 해서요.


그럼. 그 말을 끝으로 아카아시는 두 갈래의 길 중 오른쪽 길로 걸어갔음. 이 골목은 항상 아카아시와 보쿠토가 헤어지는 길이었음. 이 부근에 도착하면 둘은 인사를 나누고 보쿠토는 왼쪽으로, 아카아시는 오른쪽으로 향했음.

보쿠토의 반응이 궁금하지도 않은건지 아카아시가 먼저 가버린 탓에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표정이 어떤지, 자신의 감정은 어떤지 전혀 전해주지를 못했음. 어쩌면 그게 더 잘된 일일지도 몰랐지.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그저 자신의 팀의 세터, 친한 후배, 그 이상으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거든. 아카아시에게 고백을 들은 그 때도, 사흘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였음. 보쿠토는 명백한 이성애자였고, 남자에는 관심이 없었음. 동성애자를 혐오하는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성의 애인을 만들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음. 그래서 그 이후로 보쿠토는 무의식적으로 아카아시를 피하고 있었음. 아카아시도 보쿠토가 자신을 불편해 하는 것을 어느정도 느끼고 있었지만 아카아시도 조금은 예상한 반응이었음. 그저 보쿠토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하는 것, 그게 아카아시가 보쿠토에게 고백한 이유의 전부였음. 보쿠토와 사귀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딱히 보쿠토와의 연애를 바라지는 않았음. 아카아시도 안될 것을 알고 있었음.

아카아시의 고백 이후로 보쿠토는 눈에 띄게 아카아시를 거부했음. 스파이크를 멋지게 성공했을 때 항상 하던 하이파이브도, 늦게까지 남아 자율연습을 하던 것도 더이상은 하지 못했음. 어쩌면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보쿠토는 헤이! 하며 높게 올린 두 손바닥을 이내 잔뜩 굳어버린 표정과 함께 거두어버렸음. 아카아시와 마주친 보쿠토의 눈에는 어색함이 가득했음.

자율연습이 없어졌으니 둘은 더이상 등하교를 함께하지 않았음. 보쿠토는 아카아시 대신 새로 들어온 1학년 세터를 연습 상대로 활용했음. 그런 보쿠토를 보며 아카아시도 서운함을 느꼈지만 딱히 티를 낼 수는 없었음. 결국 자신이 자초한 일이니까. 그렇게 아카아시와 보쿠토는 점차 멀어졌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화도 하지 않았음. 팀원들도 두 사람의 사이가 소원해졌다는 것을 느꼈지만 굳이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음.

그러던 어느날, 보쿠토에게 여자친구가 생겼음. 귀엽게 생긴 3학년 여학생이었음. 그래, 선배에겐 저런 사람이 더 어울리겠지. 하며 아카아시는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가슴 한 켠이 찌르르한 걸 숨기기는 어려웠음. 여자친구와 함께 있는 보쿠토를 볼 때마다 아카아시는 우울해졌음. 그 사람이 부러웠음. 보쿠토의 사랑을 받는다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음. 아카아시도 겉으로는 신경 안쓰는 척 했지만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보쿠토와 늘 헤어지던 그 골목 어귀에 설 때마다 눈물이 흐르는 건 어쩔 수 없었음.

그렇게 어색한 나날이 지속되다 어느새 졸업식이 다가왔음. 아카아시는 졸업식에 참석하는게 조금은 부담이 되었지만 이번에 졸업하는 배구부 선배가 보쿠토만 있는게 아니었기 때문에 무거운 발걸음을 졸업식장으로 이끌었음. 아카아시는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여자친구와 함께 서있는 보쿠토를 보고 졸업식장을 뛰쳐나왔음.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음. 오늘이 지나고 나면 보기 힘들텐데, 한동안 못볼지도 모를텐데 하면서도 아카아시는 다시 그 곳으로 들어갈 수 없었음. 보쿠토를 마주하면 눈물이 흐를 것 같았음. 아카아시는 그 길 그대로 그냥 집에 돌아와버렸음. 왜 먼저 갔냐는 배구부원들의 문자가 눈에 띄었지만 아카아시는 폰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음. 아카아시는 두 눈을 팔으로 가리고 한숨을 내쉬었음. 그냥 좋아한다고 말하지 말 걸 그랬나, 아카아시는 잠시 후회했지만 그래도 변하는 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그 생각도 접어버렸음. 이미 저질러진 일이었고 돌이킬 수 없었음. 아카아시와 보쿠토는 너무나도 멀어져버렸고 둘의 거리 사이에는 무너뜨릴 수 없는 벽이라도 세워진 듯 했음.


-


보쿠토도 아카아시가 싫어서 피한 건 아니었음. 그저 어딘가 어색하고 부끄러웠기 때문이었음. 고백 이후로 이상하게 아카아시를 볼 때마다 얼굴이 빨개졌고 아카아시와 몸이 살짝이라도 스칠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음. 그 때의 보쿠토는 알지 못했음. 그게 지독한 짝사랑의 징후라는 걸.

그 후로 보쿠토는 여자친구도 생겼지만 이상하게 여자친구에게 정이 가지 않았음. 그 사람이 싫었다기보단 딱히 두근거림이 느껴지지 않았음. 같이 있어도 그저 편할 뿐 손을 잡고 싶다거나 안아주고 싶지는 않았음. 하지만 보쿠토는 그 여자와 헤어지지 않았음. 보쿠토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아카아시 때문이었음. 여자친구라도 있으면 아카아시가 관심을 좀 줄일까 해서.

졸업을 하던 날, 보쿠토도 내심 아카아시가 오기를 바라고 있었음. 졸업식 내내 쉴 틈없이 굴러가던 두 눈동자는 오직 검은 곱슬머리만을 찾고 있었음. 결국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보지 못했고, 괜히 마음이 헛헛해졌음. 그런데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탓할 수 없었음. 먼저 아카아시를 멀리한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졸업을 축하하는 팀원들 앞에서, 보쿠토는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억지로 웃음 지었음.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보쿠토는 여자친구와 헤어졌음. 보쿠토가 충분한 애정을 주지 못한 게 이유였음. 학교가 멀어지고 난 후로 보쿠토는 여자친구와 거의 연락도 하지 않았음. 그냥 귀찮아서. 그게 이유였고, 그래서 보쿠토는 차였음. 근데 막상 그게 또 아무렇지 않았음. 오히려 후련했음. 짐을 하나 덜어낸 느낌이었음. 근데 왠지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답답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음. 왜지, 하고 한참을 고민해봤지만 아무런 해답도 도출되지 않았음.

보쿠토가 답을 찾은 건 한참 뒤에 일이었겠지.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던 아카아시가 처음으로 라인에 올린 프로필 사진을 보았을 때 보쿠토는 난생처음 밀도 높은 두근거림을 느꼈음.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아카아시를 누군가가 몰래 찍은 사진이었는데, 내리깐 눈이, 그리고 그 위에 위치한 긴 속눈썹이 정말 예쁘다는 걸 보쿠토는 그 날 처음 알았겠지. 보쿠토는 한참동안 고민을 하다 아카아시에게 라인을 보냈음.


잘지내?


특별할 것 없는 세 글자였지만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서 답장이 오기 전까지 일 분에 다섯 번씩 핸드폰을 쳐다보며 두근거림을 숨기지 못했음.


오랜만이네요, 보쿠토상.


한시간 이십분만에 온 답장을 본 보쿠토의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뛰었음. 내가 아카아시를 좋아하는구나. 보쿠토는 자신의 마음을 드디어 깨달았음. 아카아시가 고백을 한 지 4년 째 되는 해였음.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였음. 보쿠토의 마음은 시간이 지나며 더욱 깊어졌지만, 아카아시는 흘러버린 시간 동안 보쿠토를 향한 마음을 이미 정리해버린 후였음. 아카아시는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보쿠토를 좋아했음. 몽땅 사랑을 주고 나니 그냥 어느 순간부터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뿐 더이상 가슴을 뛰게 하는 존재가 아니었음. 맞아, 진짜 좋아했었지. 하고 추억할 뿐이었음. 보쿠토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음. 3년 만에 만나 밥을 먹고, 카페에 앉아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지만 아무런 감정도 아카아시에게는 느껴지지 않았음. 그러나 보쿠토는 달랐음. 아카아시의 눈빛, 손짓 하나하나에 가슴이 뛰었겠지. 그러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고백했음. 아카아시는 고민할 여지도 없이 단칼에 거절했음. 예전의 일에 대한 복수라거나 그런 건 아니었음. 그저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았을 뿐임. 아카아시는 저는 보쿠토상이 별로 좋지 않은데요, 하고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전했음. 보쿠토도 굳이 아카아시를 잡지 않았음. 잡는다고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고등학생 때의 아카아시처럼자신도 실컷 앓고 나면 괜찮아질까. 보쿠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카아시를 보냈고, 그 이후로 아카아시에게 연락을 하거나 만나자고 불러내지 않았음. 그저 혼자 앓고, 혼자 삭이며 멀찍이서 아카아시를 바라볼 뿐이었음.







----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어서야 그 날개를 편다.


사건이 끝날 때 쯤 되어야 그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대충 뭐 이런 뜻인데. 제 맘대로 보쿠아카에 대입해서....! 삽질하는 보쿠아카를 생성해냈습니다.... 아카아시가 마음 정리 다 하고나서야 아카아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보쿠토ㅠㅠ


근데 나 여기서 이렇게 끊으면 안되는것같지 않아요....? 결말 이상해.

표삼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