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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아카] 후회의 미학 2

[보쿠아카] 후회의 미학 2




w. 표삼


한 번 시작된 생각은 끝도 없이 이어지곤 했다. 밥을 먹을 때도, 친구들과 함께 할 때도, 잠을 자려고 누운 그 순간에도 그의 생각은 보쿠토의 머리를 온통 지배했다. 돌이켜보면 그다지 사랑한 것 같지도 않은데, 자신이 바랐던 건 오로지 설렘 뿐이었던 것만 같은데 이상하게 아카아시가 그리워졌다.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떻게 그를 붙잡겠는가.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용서를 구할 용기조차 없었다. 몇 번이고 그의 번호를 누르려는 자신의 손을 안간힘을 다해 저지한 후, 베개 위에 얼굴을 처박는 것 말곤 보쿠토도 별 다른 수가 없었다.

보쿠토가 그렇게 고대하던 만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루어졌다. CC였던 두 사람은 보쿠토가 복학함과 동시에 학교에서 마주치는 일이 잦아졌다. 각각 체대와 경영대 소속이었던 둘은 비록 전공을 달랐지만 이웃한 두 단과대 덕분에 심심찮게 부딪히게 되었다. 그런 우연 속엔 보쿠토가 몰래 감춰둔 의도적 만남 또한 존재했다. 하지만 아카아시는 늘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목소리를 무시하곤 했다. 마치 없는 사람인 것 마냥, 보쿠토의 곁으론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올곧게 걸어갔다. 혼자 남겨진 보쿠토는 쓰게 웃었다. 

"나 뭐하는 거야."

혼자 속삭이며 두 손에 얼굴을 묻은 채 웃었다. 울음이 담긴 웃음이었다.




그런 엣 연인을 마주하는 아카아시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한 번 쯤은 그의 인사를 받아줘볼까,미친 척 하고 문자라도 보내볼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십수번씩 떠올랐지만 아카아신 둘의 마지막에서보쿠토가 보여줬던 그 표정을 아직 잊지 못 했다. 가슴 깊숙한 곳까지 칼을 꽂아넣던, 더 이상 사랑하던 그를 붙잡을 수도 없게 만든 얼굴이었다. 구질구질해지고 싶지 않았다. 한때, 이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믿던 자신이 바보같았다. 그가 자신에게 했던, 곧이곧대로 믿어버린 그 모든 말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돌아올 답이 어떨지 알았기에 아카아시는 보쿠토에게 매달리지 않았다. 자길 버린 사람에게 울고 불고 매달리며 애원할만큼 아카아시는 멍청하지 않았다. 방 안에 남아있던, 그가 준 물건들을 모두 버렸다.연락처도 삭제하고 그 동안 나눴던 메신저 대화 내용도 모조리 지웠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리움에 잠식되어버릴 것만 같았기에. 아카아시는 살아내야했다. 그가 준 상처 따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보내야했다. 그러기 위해서 아카아시는 그 동안의 시간을 기억 속에 묻어버린 채 앞으로는 꺼내보지 않기로, 그가 없이도 행복한 척 하며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사랑 따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아픈 마음을 다독였다.

하지만 그런 다짐도 오래 가지 못 했다. 교양 수업을 마치고 팀 과제를 하기 위해 캠퍼스를 바쁘게 가로질러가던 아카아시가 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보쿠토를 마주친 탓이었다. 그에게 손목을 붙잡힌 아카아시는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보쿠토를 쳐다봤지만 보쿠토는 그를 놓아줄 마음이 없었다. 조원들과의 약속이 있어 가야한다는 아카아시의 말은 도대체 어디로 들은 건지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잡아끌 뿐이었다.

도착한 곳은 전에 제 집처럼 드나들던 보쿠토의 자취방이었다. 제정신이냐며 역정을 내는 아카아시의눈을 똑바로 응시한 채 보쿠토가 말했다.

"얘기 좀 해."

"가봐야 해요."

"잠깐이면 돼."

"선배랑 할 얘기 없어요."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사귀기 전으로 돌아갔단 걸 알아챈 보쿠토는 왠지 피가 식어버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아카아시를 보낼 순 없었다. 오늘이 아니면 더 이상 용기를 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무작정 이 곳으로 데려오긴 했는데, 막상 할 말을 정리하지 못 한 보쿠토가 어물쩡대고 있을 때 아카아시가먼저 입을 열었다.

"왜 절 여기로 데려오신 거예요?"

"그야 아카아시가 우리 같이 있는 거 사람들 눈에 띄면 안된다고 했으니까."

"저랑 하던 섹스가 그리워서 그런 건 아니고요?"

날카로운 그의 어투에 보쿠토는 놀라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물론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건 인지하는 바이지만, 전혀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보쿠토는 맹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카아시가, 우리의 재회를 이렇게나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니야, 아카아시. 그런 건 ...."

"선배 저랑 어떻게 해보려고 저 여기로 데려오신 거잖아요. 제 말이 틀려요?"

"아, 아카아시. 그게...."

"그리고 사람들 눈에 띄는 거 싫다고 하신 건 선배였어요. 그래서 밖에선 제 손도 잡지 않으셨고, 저랑 같이 있다가 선배 친구들을 만나면 그냥 친한 동생이라고 얼버무리셨잖아요. 사람들이 볼까봐 핸드폰에이름도 그냥 [아카아시 케이지]라고 저장해두셨잖아요."

"......."

"절 사랑하지 않으셨잖아요, 선배는. 다 거짓말이었잖아요."

보쿠토가 그리던 시나리오는 이런 게 아니었다. 제가 진심으로 사과를 하면, 그 때의 일에 대해 아주 많이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면 아카아시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받아줄 거라고만 알았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보쿠토는 생각했다. 아카아시도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고, 괜한 자존심 때문에 먼저 이렇게 붙잡아주길 기다리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와 함께여서 행복했던 시간들을 전부 지워버린 것이었다. 매일을 울고, 잠시 그쳤다 또 울고. 밥도 넘기지 못 하며 겨우 보쿠토를 그렇게 지워냈을 거다. 보쿠토가 아카아시와의 재회를 위해 노력하던 그 시간 동안, 아카아시는 반대로 보쿠토의 흔적을 조금씩 비워나갔던 것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나 엇갈려있었다.

"선배가 바라던 건 제 몸 뿐이었어요."

더 이상 아니라는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전부 거짓말이나 핑계로만 들릴 테니. 보쿠토는 얼이 나가버린 사람처럼 멍하니 아카아시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 아카아시는 울지 않았다. 가슴 속으로도 울지 않았다. 목소리가 떨리지도 않았고, 괜한 불안감에 손가락을 만지작거리지도 않았다. 차갑고 차분했다. 이 순간을 준비하고 기다려온 사람처럼 냉정했다. 

굳게 닫혔던 현관문이 또 한번 열리고, 이 방엔 보쿠토만이 남았다. 그 언제 아카아시가 있었냐는 듯 방 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보쿠토는 바닥에 주저앉아 웃음을 터뜨렸다. 감정이라곤 하나도 실리지 않은 빈 웃음이었다. 미친 사람처럼 한참을 웃다가, 그대로 엎드려 울었다. 이러다 몸속에 있는 수분이 전부 빠져나가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래도록 울었다. 그의 집을 떠나지 못 하고 현관 앞에 쭈그려 앉아있던 아카아시도 울었다. 틈새로 빠져나오는 옛 연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벽 하나의 거리를 두고 그와 같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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