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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아카] 끓는점 02

회지 발행 예정으로 연재합니다.

[보쿠아카] 끓는점 02



본 글은 3-5회 가량 샘플로 공개된 후 회지로 발행될 예정입니다. 


1편 보기 - http://posty.pe/2d3qaq





*



“아카아시!”

 아카아시는 제 이름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익숙한 모습의 사내가 서있었다. 아카아시는 별 대답 없이 가방 속에서 챙겨온 도시락을 꺼낸다.

“아카아시! 얼른!”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재촉해오는 목소리에 웃음이 양 입술의 작은 틈새를 비집고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아낸 아카아시는 휘어진 눈꼬리를 들키지 않으려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는 척 고개를 숙였다.

“옥상 자리 뺴앗기면 어떻게 해!”
“괜찮습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옥상이 열려있는 줄도 모르니까요.”

 괜히 여유롭게 대답하는 아카아시는 어쩌면 그저 보쿠토를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몰랐다. 복도를 휙휙 둘러보며 눈치를 살피던 보쿠토는 그제야 아카아시의 교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당황한 아카아시는 보쿠토에게로 눈길을 돌리며 급하게 책상 위에 올려둔 도시락 통을 집어 들곤 의자에서 일어섰다.

“선배 그러다 선생님이 보시면 벌점 받는다고요…!”

 보쿠토는 빠른 걸음으로 자신에게로 걸어오던 아카아시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

“그렇지만 엄청 배 고프단 말이야!”

 보쿠토는 그렇게 붙잡은 아카아시의 손목을 옥상에 도착해 도시락 뚜껑을 열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아카아시가 제 마음을 자각한 건 올해 초였다. 그 날도 평소와 같이 보쿠토와 둘만 남아 늦게까지 자율 연습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지친 몸을 침대에 내던지며 아카아시는 내일이 토요일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잠시만 쉬다가 다시 일어나려던 아카아시의 다짐은 어느새 얕은 잠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아카아시. 잘 지내야 해.”
“선배. 어디 가시는 거예요. 가지 마세요. 왜 갑자기 떠나시는 거예요. 선배, 가지 마세요. 그렇게 가버리면 전 이제 어떡해요. 선배….”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아카아시는 재빠르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두려움을 한가득 담은 눈으로 주위를 살피지만 이 공간은 자신이 들어왔을 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급하게 책상 위에 놓인 시계를 확인한 그는 시간이 고작 15분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아카아시는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왼쪽 가슴팍을 양손으로 붙잡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순간, 뺨을 타고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감촉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아카아시는 그것의 정체가 눈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울고 있었다. 보쿠토가 자신을 떠나버렸다는 그 짧은 꿈 하나에 그는 울고 있었다. 그 때, 시계 옆에 놓아둔 휴대폰에서 짧은 알림 음이 울렸다. 그는 꽂아둔 충전 선을 빼고 화면을 확인했다.

[아카아시! 내일 뭐해? 바빠?]

 보쿠토였다. 방금 전의 꿈과 달리, 그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괜히 또 눈물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엄지와 검지로 찡하게 울리는 코를 붙잡고 잠시 뜸을 들이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에게 짧은 답장을 보냈다.

[왜요?]
[괜찮으면 내일 나랑 점심 먹고 영화 볼래? 보고 싶던 영화가 어제 개봉 했어! 아까 집에 가면서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네. ㅎㅎ]

 마치 아카아시의 답장을 내내 기다리기라도 한 듯 그에게선 곧바로 회신이 왔다. 들뜬 목소리가 화면 너머로도 들려오는 듯 했다. 아카아시는 내일 할 일을 짧게 고민하곤 다시 채팅 창을 켰다. 당장 제출해야 하는 과제도 없었고, 주말마다 과외를 받는 선생님께서도 이번 주는 일이 있다며 수업을 다른 날로 미루었다. 공교롭게도 간만에 한가한 토요일이었다.

[좋아요.]

 
 보쿠토는 함께 등교를 할 때처럼 아카아시의 집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한 보쿠토는 설레는 마음으로 연거푸 시계를 확인했다. 머지않아 모습을 드러낸 아카아시를 발견한 보쿠토는 환하게 웃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카아시!”
“선배 먼저 와 계셨네요.”

 저 나름 2분 일찍 나왔는데요. 아카아시가 그렇게 덧붙였다. 보쿠토는 대답 대신 따스한 미소를 띄운 얼굴로 아카아시의 손목을 잡아챘다.

“얼른 가자!”

 빠른 발걸음으로 앞서 나가 저를 이끄는 보쿠토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는 걸 아카아시는 알지 못 했다.



*



 어쩌면 그 때 보쿠토는 자길 좋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그건 분명한 거짓말이겠지만, 아카아시는 언제까지고 그런 착각 속에서 살 수 없었다. 졸업 이후, 그는 한 번도 먼저 연락을 해온 적이 없었다. 심지어 보쿠토 선배에게 예쁜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이 배구부 전체에 퍼지기도 했다. 물론 의심이 가득 담긴 댓글에 보쿠토는 그냥 친구 사이일 뿐이라며 매번 해명을 하긴 했지만, 그의 SNS 계정에 아카아시가 처음 보는 사람들과 꽤나 다정해보이는 포즈로 찍은 사진이 올라온 것도 여러 번이었다. 아카아시는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무슨 사이냐고 묻는다면 선배는 그저 친한 후배라고 나를 소개하겠지? 우린 겨우 그 정도겠지?
 그저 사랑을 모르는 고등학생의 짧은 착각이라고 제 마음을 치부한 아카아시는 매일을 답답함 속에서 살았다. 가끔은 보쿠토에게 전화를 걸어 정말 자신을 그저 후배로서 아꼈던 거냐고 묻고 싶은 걸 겨우 참아내며 먹먹한 가슴을 안고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냈다. 평생 빛이라곤 한 줄기조차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응달 안에서 잠을 자고, 또 다시 깨어나는 것. 그것이 아카아시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던 순간도 결국은 모두 지나갔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수험 생활이 끝나고, 아카아시는 처음으로 애인이 생겼다. 상대는 번화가 의류 스파 브랜드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두 살 위의 대학생이었다. 처음 그 사람에게 호감이 생겨 제대로 만나보고 싶단 마음이 들었을 때만 해도 아카아시는 자신이 보쿠토 따위는 금방 잊을 거라고 생각했다. 후배를 착실히 챙기려던 선배의 애정을 사랑으로 넘겨짚어버린 자신의 멍청함을 탓하며 새로 찾아온 사랑에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아카아시는 다짐했다. 하지만 그 감정은 금방 실체를 드러냈다. 사랑의 탈을 쓴 외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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