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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아카] The Tarot, and You - 1

[보쿠아카] The Tarot, and You - 1



은은한 라벤더 향기가 폐부를 가르고 퍼졌다. 방 안을 밝히는 것은 작은 양초 네 개 뿐이었다. 아카아시는 짙은 자주색의 벨벳으로 덮인 테이블 위에 놓인 카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카드를 고르는 손짓엔 망설임이 없었다. 고른 카드를 뒤집어 본 후 다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의 앞에 앉아있던 날카로운 인상의 늙은 여자가 그 카드를 유심히 살폈다. 카드 세 장을 번갈아보는 여자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눈치를 살피던 아카아시도 덩달아 표정을 굳히기 시작했다. 


"조심해."

"네?"


잠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그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듯, 여자는 다시 한 번 카드를 들여다본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어느 것도 없었다. 작은 방 안에는 한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남자가 한 명 나타날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여자는 손 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손짓엔 불안함과 약간의 초조함이 담겨있다는 걸 아카아시도 모르지 않았다. 원래 타로라는 게 이런 건가, 이렇게 심각한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때 쯤 여자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웬만해선 엮이지 않는 게 좋아.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 거야. 조심하는 게 좋겠어."

"그 남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런 것까지는 알 수가 없어.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머지않아 너를 찾아올 거라는 거야. 어떤 형태의 감정이라도 절대 마음을 줘선 안 돼. 사랑이든, 우정이든, 아님 단순한 연민이든."

 

너를 망쳐버릴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여자는 말을 마쳤다. 아카아시는 예상하지 못 한 충격에 그녀에게 아무런 질문도 더 이상 하지 못 했다. 그저 이 공간에서 어서 빠져나오고 싶을 마음 뿐이었다. 아카아시는 지갑에 있는 현금을 꺼내 카드가 올려진 테이블 위에 올려둔 후 짤막한 인사도 없이 빠르게 그곳을 빠져 나왔다. 소름이 돋고 등 뒤로 한기가 느껴지는 이유는 그저 음산했던 아까의 분위기 탓이었을까. 아카아시는 발걸음을 빨리 한다.



*



"코노하 선배."


아카아시가 낮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뒤를 돌자마자 보이는 아카아시의 모습에 코노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카아시가 이런 눈빛과 표정으로 코노하를 부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코노하는 본능적으로 아카아시가 자신에게 무언가 해야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 챘다. 그것도 아주 중요하고 은밀한.



"너 그런 걸 진짜 믿어? 당연히 그냥 재미로 보는 거지!"

"그래도 분명 선배가...!"


아카아시는 잠시 한숨을 쉬며 흥분을 가라앉힌 후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선배가 분명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 분, 예언자 마냥 미래를 잘 본다고."


그 말에 코노하는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아카아시의 얼굴엔 불쾌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코노하는 한참을 그렇게 웃다가 눈물마저 훔친다.


"네 성격이 원래 진지한 건 알았지만, 그냥 넘겨. 그깟 카드 몇 장으로 어떻게 미래를 보냐."

"그렇지만 굉장히 불안하단 말입니다."

"타로라는 거, 계속 그 결과를 의식하고 현실에 끼워 맞추려고만 생각하니까 그게 다 맞는 것 같은 거야. 그냥 잊어버리는 게 어때?"

"말이 쉽죠."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밥 먹었어? 밥 먹으러 갈래?"


코노하가 웃으며 아카아시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 요 앞에 돈가스 집 생겼는데 맛있대. 자신을 이끄는코노하의 몸짓에도 아카아시는 여전히 찝찝함을 마음 한 구석에 남겨둔 채였다. 퍼석하게 씹히는 튀김옷의 감각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




더운데 목이라도 축이자며 코노하가 끌고 온 카페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점심시간을 맞이한 대학가의카페는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붐볐고, 자리를 잡아두겠다는 코노하의 말에 아카아시는 별 수 없이 카운터옆에 덩그러니 서서 주문한 음료가 어서 준비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앗...! 짧은 놀람과 함께 아카아시가 입고 있던 흰 셔츠가 어두운 색으로 물들어갔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못 봐서...! 괜찮으세요? 자신에게 차가운 음료를 쏟은 남자는 픽업대에 대충 들고 있던 컵을 내려둔 뒤 냅킨을 한움큼 뽑아 아카아시의 옷 위로 문질렀다. 아카아시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 묻어있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떡해."

"됐으니 그만 하시죠."

"아직 옷 축축한데요."

"불쾌하니 그만 하세요."


아카아시가 그 남자의 손을 쳐냈다. 남자의 표정은 당혹감에 젖어 있었다. 남자는 메고 있던 가방에서작은 메모지와 펜을 꺼내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거 제 이름하고 연락처인데요. 제가 지금 수업이 있어서요,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이따 연락 주시면 안될까요?"

"장난 하십니까?"


아카아시는 진심으로 그 남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남자가 다시 가방을 뒤적이는 사이, 아카아시는 그 남자가 건넨 쪽지를 훑어 읽는다. 보쿠토 코타로, 제 착각일지 몰라도 이상하게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듯 한 이름이었다. 


"이걸로 옷 새로 사 입으시고 지금 입고 계신 옷도 세탁 맡기세요. 제가 정말 시간이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연락 꼭 주세요!"


보쿠토 코타로라는 이름이 새겨진 카드와 연락처만을 남긴 그 남자는 반쯤 비어버린 음료 컵을 들고 부리나케 카페를 나섰다.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확인하며 교문 쪽으로 뛰기 시작한 걸 보니 수업 시작 시간이 촉박하단 말은 아무래도 거짓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아카아시는 생각했다. 커피로 축축히 젖어든 가슴팍이 마치 보쿠토라는 이름의 남자가 남긴 흔적인 것만 같아서 아카아시는 괜히 마음이 이상했다. 지금의 간질거림은 아까 얘기했던 불쾌함이라는 감정과 또 다른 종류인 것만 같았다.




*




아카아시는 손에 핸드폰을 쥔 채 한참을 고민하는 중이었다. 연락처를 받아 오긴 했지만 어떤 말을 꺼내야 좋을지 쉽게 생각이 나지 않았던 탓이다. 화가 났음을 어필해야 할까, 아님 같은 학교 학생끼리 좋게 넘어가는 게 좋을까. 차라리 내 번호를 줄 걸 그랬나. 


[아까 카페에서 만난 사람입니다. 보시면 답장 주세요.]


아카아시는 대화의 시작을 보쿠토에게 미루는 것을 택했다.





답장이 오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까는 죄송했다는 사과와 괜찮다는 말이 오가고, 아카아시가 먼저 카드를 돌려줘야 하니 잠깐 만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냈다.


[아 맞다. 괜찮으시면 학교 근처에서 내일 점심 때 쯤 보실래요? 제가 밥 한 끼라도 사드리고 싶어서요.]


보쿠토의 제안을 아카아시는 거절하지 않았다. 내일은 일주일에 단 하루 뿐인 공강이었지만, 보쿠토의 말에 굳이 학교 근처까지 가겠다고 한 자신이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




"죄송합니다. 어제 저 때문에 많이 불편하셨죠."

"괜찮습니다."


아카아시는 마음에도 없던 말을 꺼냈다. 그 일 때문에 어제 집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신경이 예민했다는 얘기는 굳이 내뱉고 싶지 않았다. 보쿠토는 멋쩍게 웃으며 메뉴판을 아카아시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드시고 싶은 거로 먼저 고르세요."


어제와는 다르게 보쿠토의 행동에선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어제 쓰고 있던 두껍기만 하던 안경도 온데간데 없었다. 아카아시는 제 앞에 앉아있는 남자가 하루 사이에 분위기가 묘하게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식사를 마친 후, 두 사람은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애초에 식사를 핑계로 만난 그들이 커피까지 함께 마실 이유는 없었지만, 이렇게 헤어지긴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어제 처음 만난 보쿠토와 아카아시는 각자의 음료를 앞에 둔 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쿠토의 목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창가를 내다보던 아카아시는 문득 어제를 회상했다.


"오늘은 수업 없으십니까?"

"네? 아, 저는 오늘 오전 수업이 끝이라서요. 아카아시 씨는 수업 언제부터세요?"


오늘 공강인데 당신 때문에 굳이 이 멀리까지 나왔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던 아카아시가 자기도 오늘은 오전에 수업이 끝났다는 핑계를 댔다. 자기도 모르게 말을 더듬은 탓에 방금 했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금방 들킬지도 모른다고 아카아시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대답에 보쿠토는 표정이 미묘하게 밝아졌다. 아 그러세요, 그렇게 덧붙인 보쿠토는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괜히 빨대로 장난을 쳤다.


"그... 그럼 이따 같이 영화 보실래요?"


아카아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저 그게... 보고 싶었던 게 며칠 전에 개봉했는데.... 아니에요. 불편하시면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보쿠토가 더 붉어진 얼굴로 억지미소를 지었다. 거절 당하기 싫은 것이 분명했다. 아카아시의 앞에 앉은 이 남자는 제발 같이 가겠다고 해주세요, 라는 문장을 목소리를 제외한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래요. 같이 봐요."


아카아시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창 밖의 나무에서 시작된 시끄러운 매미소리가 카페 안을 나지막히 채웠다. 여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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